Focus2011/12/05 17:11
인터뷰를 시작하려 마주 앉은 사이로 파리 한 마리가 어지럽게 돌아다닌다. 신경 쓰였던 밝넝쿨이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잽싸게 손을 뻗어 파리를 잡는데 그 동작이 춤사위 같다. 일상 모든 소리를 음으로 인식하는 게 절대음감이라면, 밝넝쿨에겐 세상 모든 동작을 춤으로 만드는 절대무(舞)감이 있다. 그쯤 되자 ‘밝넝쿨’이란 이름이 더욱 비범하게 다가왔다.


확고한 춤의 정신
“넝쿨은 태어났을 때 할아버지께서 지어준 이름이에요. 커서 놀림받을까봐 걱정하신 어머니 덕에 호적에는 ‘영준’이란 이름으로 올라갔죠. 넝쿨로 개명한 지는 5년 정도 됐어요. 춤에서 즉흥을 시작하게 된 시기, 무용단 ‘오! 마이라이프 무브먼트 씨어터’를 설립한 때랑 맞물려요.”

단순히 이름만 바꾼 게 아니었다. 무용을 하면서 겪은 내적변화를 외적으로도 명확하게 표출하고 싶어, 즉흥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춤의 영역을 넓힌 것은 물론, 다른 친구들과 아이디어를 공유하고자 마음먹고 무용단을 창단했다. 말하자면 심경의 변화가 생긴 여성들이 헤어스타일을 바꾸듯 모든 걸 새롭게 정리하고 싶었다는 것.

“벽에 막힌 기분이었어요. 지금까지 생각한 춤이 여기에서 끝나는 게 아닐까 두려웠어요. 그러자 더 넓은 세계로의 여행이 간절해졌어요. 그때부터 아내랑 세계 각지의 페스티벌에 참여해서 무용가들도 만나고 워크숍을 가졌어요. 1-2년간 세계 여행만 했어요.”

여행을 계기로 원래 이름 넝쿨을 되찾았다. ‘박’을 버리고 ‘밝’을 성(姓)으로 쓰게 된 건 스승의 조언 때문. ‘밝다’는 의미에서였다. ‘밝넝쿨’은 그렇게 재탄생했다. 2008년에는 유럽데뷔도 하였다. 여행은 그때까지의 작업·생활·인간관계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전환점이 되었다. 그런데 춤 하나만 보고 달려온 밝넝쿨은 사실 춤이 아닌 다른 장르를 꿈꿨었다.

“원래 꿈은 뮤지컬 배우였어요. 춤을 워낙 좋아했었죠. 힙합이나 브레이크 댄스 같은 춤이요. 그런데 저희 집은 굉장히 시골이었거든요.(웃음) 얼마나 시골이었느냐면 막걸리 심부름을 받으면 자전거 타고도 30분은 가서야 살 수 있었어요. 그러니 춤 배우는 건 물론이고 추는 것도 어려웠죠. 그러면서 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시골학교치고는 클럽활동이 활발해서 연극반에 들어가게 됐어요. 춤과 연기 두 가지 다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뮤지컬을 생각했어요. 춤 잘 추는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뮤지컬 배우가 꿈이었지만 끝까지 춤은 빠지지 않는다. 본격적으로 춤을 배우기 위해 도시로 나왔는데 막상 배워보니 춤이 훨씬 흥미로웠다. 혹시 지금이라도 연극이나 뮤지컬 장르와 협업할 계획은 없냐고 물으니 그가 소탈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무용가는 몸을 탐구하고 몸을 샅샅이 사용하는 직업이에요. 몸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춤이니 당연히 소리도 낼 수 있고, 웃을 수도 있지만 그건 그런 요소들이 몸 안에 있기 때문에 나오는 자연스러운 표현입니다. 협업을 추구해서 나오는 건 아니지요. 거기다 아직도 춤에서 해야 할 게 무궁무진해서 협업까진 생각지 않고 있습니다.”


밝.넝.쿨 춤의 가능성 제 2막
밝넝쿨의 공연을 본 사람들은 말한다. 그의 춤에는 몸과 실험이라는 두 줄기가 관통하고 있다고. 지금까지 그의 공연이 ‘몸’의 가능성을 탐구했다면, 이번 LIG아트홀 기획공연 <춤.神>에서는 ‘춤의 가능성을 탐구’하려한다. 제 2주제를 여는 첫 번째 공연인 셈이다.

“첫 번째 주제에 비해 좀 더 확장된 개념이에요. 몸이라는 단어는 빠졌지만 오히려 더 몸에 집중한다고 볼 수도 있죠. 왜냐하면 현대무용이라는 예술장르에서 오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든 춤의 개념들을 가져오거든요. 춤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가를 목표로 합니다.”

공연 제목 <춤.神>은 ‘춤의 정신’이라는 뜻이다. 이번 공연에 참여하는 무용수는 밝넝쿨을 포함해 총 일곱 명. 각자의 세계를 가진 현대무용가 일곱 명이 대중음악에 맞춰 춤을 출 예정이다. 주목할 점은 10대부터 50대로 다양한 연령대의 무용수들이 참여하는 점. 거기에는 개인적 소망이 작용했다.

“선생님들의 춤을 보고 싶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어요. 무용가보다는 안무가로 많이 활동하시니까요. 선생님들께서 직접 춤을 추신다면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실 수 있을 것 같았죠. 안무를 만드는 데만 열중하고, ‘춤추는 행위’ 자체는 등한시하는 요즘 친구들에게 특히요.”

그의 공연은 비전문가와 전문가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이를 위해 객석과 무대의 경계도 허물었다. 어린아이, 노인 할 것 없이 공연 내내 한 자리에서 춤추며 즐기고 느낄 수 있도록 한 배려다. 그래서 현대무용이 어렵다는 편견을 없애고 싶었다.

“현대무용은 어렵지 않아요. 현대무용 ‘공연’이 어려운 거죠. 공연이라는 형식과 장치를 다 떼고 보면 무용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춤 유전자라는 농담을 가끔 하는데, 단지 농담만은 아니에요. 누구에게나 움직이는 본능이 실제로 몸 안에 있어요. 모든 움직임 자체가 춤이 될 수 있는 거죠. 어떤 벽 없이 자연스럽게 춤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대중가요를 사용했습니다. 너무 가벼워지지 않겠냔 우려도 있지만, 현대무용의 형식이 가벼워질 순 있어도 현대무용 자체가 가벼워지진 않는다고 생각해요.”

고정관념을 철저히 배제하고 음악을 듣는 그 순간의 느낌을 무대 위에 구현하고 싶었다는 밝넝쿨. 그래서 무용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곡이 든 CD를 직접 건네고, 꼭 집에 가서 들어보라 부탁했단다. 춤에 대한 가능성을 탐구하면서 춤 인생 제 2막을 열었지만, 몸과 춤 그리고 실험으로 그의 작품을 딱 잘라서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우리가 느끼는 모든 것은 상대적임으로, 춤에서도 지금 주어진 환경과 직관을 따라 물 흐르듯 가야 한다는 그. 그런 그에게 A를 B라고 못 박는 것은 독이나 다름없어 보이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밝넝쿨은 공연을 보러올 관객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절대 이해하거나 분석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그냥 열어두고 오세요. 마음과 몸과 소정의 티켓비만 가지고 오시면 됩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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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씬플레이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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